자료실2007.02.21 15:52

판/례/펼/치/기
연인관계에서도 강간은 성립한다.


조인섭 상담소 운영위원
/법률사무소 Law C&C 변호사

이번에 살펴볼 판례는 2006년 11월에 나온 판결로써 연인사이에서의 강간을 인정한 사례입니다.
지금까지 우리 법에서는 폭행, 협박을 ‘최협의’로 파악하여 피해자의 반항의 정도에 따라서 유죄를 인정하곤 했습니다.
이러한 해석은 연인이나 부부관계에서 일어나는 성폭력을 인정하는데 큰 걸림돌로 작용합니다.
종종 피해자의 입장에서 강간죄를 재해석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성관계를 해오던 사이’에서의 강간을 인정한 사례는 극히 드물었습니다.
데이트 관계에서의 폭력을 호소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는 요즘 연인관계에서의 강간을 인정한 이번 판결은 상당히 고무적인 것으로 볼 수 있기에 자세히 살펴보고자 합니다.<편집자주> 

 서울고등법원 형사1부는 ‘인터넷 채팅을 통해 여자 친구를 만나 종종 성관계를 가져오던 회사원 ㅁ씨가, 2004년 10월 평소와 같이 여자친구의 집으로 찾아가 관계를 가지려고 했으나, 당시 ㅁ씨의 아이를 임신 중인 상태에서 급성후두염과 중이염을 앓고 있는 여자친구가 거부하자 관계를 가지지 못한 뒤, 여자친구가 잠이 든 상태에서 여자친구의 저항을 무시하고 강제로 성관계를 가진 사건에서 ㅁ씨에게 ‘1번의 강간’을 인정해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습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은 몸이 아픈 피해자가 명시적으로 거절 의사를 표시했음에도 반항을 억압한 후 강제로 성관계를 가진 것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고 하면서 ‘피해자가 주위 사람들에게 구원을 요청할 수 있었다거나 사력을 다해 반항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강간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고 밝혔습니다.

위와 같은 판례가 주목을 받는 이유는, 그동안 법원은 형법 제297조의 강간죄가 성립하기 위한 폭행, 협박을 ‘최협의’로 파악하여 ‘부녀의 반항을 현저히 불가능하게 하거나 곤란하게 하는 정도의 폭행, 협박’이 있는 경우에 ‘강간죄’의 성립을 인정해왔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약한 정도의 폭행, 협박이 있다거나 아니면, 거부의사를 표시했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관계를 가진 경우 등에 있어서는 ‘강간에 있어서의 폭행, 협박이 있었다고 볼 수 없다’고 하며 무죄를 선고해왔었습니다.

하지만 그와 같은 판례의 태도는 강간이나 강제추행죄가 ‘성적 자기결정권’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을 무시한 견해라는 비판을 받아왔습니다. 즉, 우리 형법이나 성폭력특별법이 성 관련 범죄를 처벌하는 이유는 ‘인격권’의 가장 핵심을 이루는 ‘성적 자기결정권’을 보호하기 위한 것임이 분명함에도, 사실상 위와 같이 ‘반항을 현저히 곤란하게 만들거나 불가능하게 하는 정도의 폭행, 협박이 있을 때’, ‘죽도록 저항을 했음에도 강간을 당한 경우’에만 강간이 있었다고 해석함으로써, 사실상 ‘여성의 정조권’을 보호하는 죄로서 간주되어 왔기 때문입니다. 그 때문에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정말 죽도록 반항할 수 없었는지’를 캐내기 위해 피해자의 평소 생활, 당시의 옷차림 등 피해자를 향해 인신공격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의 질문들과 변론이 행해졌었고, 그로 인해 ‘성폭력 피해자’가 성폭력 피해 이외에 2차 피해를 입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특히 데이트 강간, 즉 연인 사이에 성관계가 있었던 경우에는 대부분 ‘화간(和姦)’으로 간주해 유죄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위 판례는, 폭행, 협박의 개념을 최협의로 해석하지 않고 더 나아가 연인 사이의 ‘데이트 강간’을 인정한 것입니다.

사실 형법 제297조 강간죄는 ‘폭행, 협박으로 부녀를 간음한 자’를 처벌하는 것으로 되어 있을 뿐이지 ‘최협의의 폭행, 협박으로 부녀를 간음한 자’를 처벌한다고는 되어 있지 않습니다. 강간죄의 폭행, 협박을 최협의로 해석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해석’일 뿐이지 법 자체가 그렇게 되어 있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간죄 폭행, 협박을 최협의로 해석하여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이 아닌 ‘정조권’을 보호하는 죄처럼 해석한 것은 ‘여성이 진정으로 반항하며 강간이라고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라고 하는 전근대적이고, 가부장적인 사고가 밑바탕에 깔려 있는 것이라고밖에 볼 수 없습니다.

이제는 그런 사고방식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습니다.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인정한 위 판결에 박수를 보냅니다

Posted by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민우회성폭력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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