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실2007.02.22 16:30

상/담/소/생/생
성폭력상담소 활동가 눈으로 본
가해자 교육

 

달개비 상근활동가


어느 토요일 오후, 라디오에서 한 남성이 결혼하기까지의 과정을 코믹하게 구성한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이야기인 즉, 소위 노총각인 남성의 어머니가 “맘에 드는 여성이 있으면 여관에 데려가서 자빠뜨려 네 여자를 만들지 않으면 집에 들어올 자격도 없다”고 말하면서 아들을 내쫒았고, 어머니 말대로 행동한 남성은 그 여성과 결혼해서 20년째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한다. 사연을 읽어주는 진행자들이 연신 웃음을 터뜨려서 자빠뜨린다는 말이 긍정적인 의미인지 잠시 헷갈릴 정도다. 아무런 준비 없이 돌발적으로 경험하는 성적 접촉이 불쾌한 경험일 거라고 추호도 의심되지 않고 재미있는 추억거리로 포장되는 순간이었다.

이처럼 일방의 성적인 욕망을 채우는 폭력적인 성각본이 재미있는 일화나 로맨스로 일반화 되고 공중파에서 회자되는 것은 성담론이 피해 생존자의 언어가 아닌 가해자로 언어로 설명되고 있고 설득력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성폭력 가해자들이 가해자로 명명되지 않는 일이 다반사이기 때문에 성폭력 가해자를 명명하는 일 자체가 성폭력을 피해 생존자의 언어로 다시 보는 작업이 된다. 그리고 가해자로 명명된 당사자가 자신의 행위를 온당히 책임는 한 과정이 가해자교육(1)이 될 수도 있다.

32명(2) 의 가해자

2006년 한 해 동안 민우회 상담소에서 성폭력 가해자교육을 받은 사람은 32명이다. 상담소에 접수된 성폭력상담건수 1,231건에 비하면 32명의 성폭력 가해자는 새 발의 피 지만 뒤집어 생각해 보면 32명의 성폭력 피해 생존자들이 공식적으로 가해자를 가해자로 명명하는 고단한 과정을 거쳤다는 점에서는 결코 적지 않은 숫자이다.

32명의 가해자들이 교육을 받게 된 과정은 다양하다. 피해 생존자가 가해자에게 법적 처벌을 대신해 공동체 내 활동정지 등의 합의 조건과 함께 가해자교육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 또는 판사가 집행유예를 내리면서 사회봉사명령이나 수강명령을 내리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구치소나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성폭력 가해자들이 재소자에게 제공되는 여러 가지 교육 중에 가해자교육을 선택하기도 한다.


첫 번째의 경우에는 각 사건마다 의뢰가 들어오기 때문에 개인 교육이(3) 이루어지는 데, 두 번째와 세 번째의 경우에는 보호관찰소(4), 구치소, 교도소에서 8-10명 정도의 대상자를 한꺼번에 의뢰하기 때문에 집단 교육이 진행된다.

성폭력가해자는 평범함을 입는다

신문이나 뉴스에 등장하는 성폭력 가해자들은 늑대로 비유되는 경우가 많다. 재현 프로그램에서 성폭력 가해자를 연기하는 사람은 인상이 험악하거나 정서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처럼 그려진다. 하지만 현장에서 만나는 가해자들은 주변의 친구, 가족, 동료들과 다를 바 없이 평범하다. 너무나 평범해서 저 사람이 정말 가해를 했을까 의구심이 드는 경우도 있다. 어떤 경우에는 스마트하고 젠틀한 인상을 가지고 있어서 외모만 본다면 인상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기도 한다.

교육에서 만나게 되는 가해자들은 가해유형도 나이도 학력도 다양하다. 60이 넘은 할아버지부터 중학생까지, 무학이라서 문맹인 사람부터 박사까지, 강도 강간부터 언어 성폭력까지. 이렇게 다양한 특성을 가지 사람들에게도 몇 가지 공통점은 있다. 사건 당시 술에 만취해 있어서 사건 후에 기억을 못한다고 주장하거나, 상대방도 동의한 성관계라고 주장하면서 억울함을 호소한다. 동시에 가해사실을 최소화하거나 부인한다. 그래서 넘어진 아이를 일으켜 준 것 뿐인데 가해자로 몰렸다고 억울해 하거나 술 먹은 상태에서 실수로 남의 집 들어가서 피해 생존자를 딸 인줄 알고 껴안고 잔 것일 뿐이라고 주장 한다.

큰일은 아니 구요

가해자뿐만 아니라 주변 관계자들도 성폭력 사건을 최소화 하는 경우가 많다. 가해자의 변호사, 가족, 친구들은 개인적인 관계에 따라 가해자를 옹호하기도 한다.  그리고 법을 집행하는 사람들 또한 피해자의 언어보다 가해자의 언어를 더 신뢰하는 상황을 종종 접한다. 한 예로, 보호관찰소 수강명령 담당관이 청소년 가해자교육을 의뢰하면서 ‘큰일은 아닌데 교육을 맡아줄 수 있겠냐’고 묻는다. 사건 내용을 듣고 보니 남자 청소년이 6세 여자아이를 집으로 데려가서 성추행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되물었다. ‘그럼, 당신 딸에게 그런 일이 있었다면 큰일 아니냐?’고. 그랬더니 당황하면서 ‘아……. 큰일이네요.’라고 말한다.

가해자만 접한 보호관찰소 담당자는 가해자의 언어로 사건을 접했고, 더군다나 가해자는 어린 청소년이었고 학교에서는 공부 잘하는 모범생이었기 때문에 가해자와 가족의 말을 믿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심지어 법적인 유죄 판결까지 받은 가해 행위를 최소화하는 일은 또 다시 가해를 해도 부인하고 최소화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심리적 환경을 조성한다. 그렇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가해행위에 대한 온당한 책임을 인정하는 가해자 교육이라는 과정이 필요하다.


성폭력 가해자가 말하는 성폭력 가해자

가해자 교육 프로그램 중에 성폭력 통념 깨기 시간이 있다. 한 집단에서 ‘성폭력 가해자는 ***한 사람이다’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하는데, 한 가해자가 ‘정신적으로 이상이 약간 있을 법한 사람’이라고 답하자 교육장이 웃음바다가 되었다. 강사가 ‘몇%나 그럴까?’ 되물었더니 ‘20-30%가 그럴 것 같다’고 대답한다. 그러자 다른 가해자들이 ‘너 하나야! 다 정신 똑바로 박혀있어’, ‘정신적으로 이상 있는 사람 아닐 것 같다’, ‘정신이상 많지 않을 것 같다. 그런 것을 잘못 알고 있다가 가해자 될 수 있다.’등 핏대를 세우면서 자신들이 얼마나 멀쩡한지를 주장했다. 결국, 처음에 말을 꺼냈던 가해자가 ‘저 말짱해요’라고 말하면서 작은 소동이 정리되었다.

이렇게 성폭력 가해자 집단에서 이루어지는 짧은 토론들은 교육자가 1시간 동안 성폭력 통념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으로 통념을 깨는 역동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성폭력 가해자는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사람일 것’이라는 통념이 가해자의 입으로 깨진다.


하지만 이런 경우도 있다. 또 한 집단에서 짧은 치마와 같이 노출이 있는 옷을 입은 여성이 계단을 올라가고 있어서 자연스럽게 눈길 갔는데, 여성이 치한으로 신고를 하는 경우 성폭력인지, 아닌지에 대한 토론이 붙었다. 그때 가해자들은 모두 여성이 짧은 치마를 입으면 건강하고 정상적인 남성이라면 눈길이 가는 것은 당연한데, 그걸 가지고 성폭력이라고 한다면 남자들은 다 눈감고 다니란 말이냐 핏대를 세우기도 한다.


가해자가 정신이상자라는 통념은 가해자를 명백하게 비하하는 논리이기 때문에 가해자 스스로 정신이상자가 아니라고 저항하게 하지만, 여성의 노출이 성폭력을 유발한다는 통념은 건강하고 정상적인 남성은 성욕이 쉽게 일고 성욕이 일었을 때 해소하는 것이 능력 있는 남성이라는 이미지와 결합되어 쉽게 깨지지 않는 것을 발견 할 수 있다. 그 깨지지 않는 통념에 부딪쳐야 할 때 성폭력상담소에서 가해자교육을 계속 진행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지 회의에 빠진다. 피해 생존자의 고통은 알려고 하지 않으면서 가해자 자신의 억울함만을 호소 할 때, 똑같은 가해를 체험하게 하는 것이 피해자의 고통을 알려주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닐까 하고 상상해 보기도 한다.


성폭력상담소에서 가해자교육을 한다는 것은

하지만, 이런 계속 되는 고민 속에서도 가해자교육을 중단하지 않는 이유는 교육을 받은 후에 성폭력에 대한 감수성이 조금은 민감해 지는 것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예전에 무심코 흘렸던 성폭력 관련기사가 눈에 귀에 들어오고 그 때마다 자신의 가해를 돌이켜 생각해 보게 되기도 하고, 가해 자체를 부인하던 가해자가 마지막 교육에서 자신의 행동이 왜 성폭력 가해인지 이제는 이해가 간다고 말할 때 당장은 눈에 보이지 않는 교육의 효과가 몇 년 후에 빛을 발할 거라는 믿음이 있어서 이다.


                                                                                                                                   
(1)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에서는 1998년부터 가해자교육에 관심을 가지고 현재까지 꾸준히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2003, 2005년에 가해자교육 메뉴 얼을 발간했다.
(2) 2006년 가해자교육에 참여한 사람은 32명인데, 그중 5명은 개인 교육으로 진행되었고 27명은 3차례에 걸쳐 진행된 집단 교육을 이수했다.
(3) 개인 교육은 1주에 1회씩 10시간-15시간 진행된다.
(4) 보호관찰소 집단교육은 법원 판결문에 명시된 대로 이수해야 하는데, 대게 40-80시간이다. 구치소나 교도소 집단교육은 자율적으로 받는 것이기 때문에 명시된 이수시간은 없지만, 보호관찰소에서 진행하는 대로 40시간을 진행하고 있다.


Posted by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민우회성폭력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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