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실2007.02.22 16:34

상/담/소/생/생
성폭력보도 모니터링의 사계


 

권박미숙 상근활동가


겨울 : 땅 고르기

“침묵은 yes가 아니다”, “가해자가 모두 변태인 줄 알았는데 아니란 걸 알았다”, “데이트 동영상 같은 사소한 것도 성범죄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장난이라 생각하면 안 된다!”
위 문장들은 2006년 하반기에 고등학교 1학년 남학생들을 대상으로 했던 4회에 걸친 성폭력 예방 교육 평가서에 써있던 <교육을 통해 알게 된 점>들이다.

성폭력 예방 교육을 하기 전에도 학생들은 ‘성폭력은 나쁜 것’ 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교육으로 달라진 것은 성폭력에 반대하는 이유와 내용이다. 성폭력에 대한 자기 자신의 통념을 점검함으로써 이런 변화가 가능했을 것이다. 

성폭력은 누구나 ‘반대 한다’ 고 말하지만 정작 반대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충분한 사회적 합의가 없다. 성적 자기결정권의 문제이기 이전에 정조의 문제로 이야기되고, 인권침해이기 이전에 성적인 화제이며, 사회적인 문제로 논의되기 보다는 가해자 개인의 극악한 인성에 대한 분노로 귀결되기 쉬운 것이다. 그리고 의무교육과정에 제대로 된 성교육이 없는 현실에서 성폭력에 대한 인식은 언론을 통해 축적된다.

그러니 그 언론이 성폭력에 대한 사회적인 통념들을 답습하고 있다면, 그래서 성폭력은 나쁘고 가해자들은 극악무도한 변태라고 생각하지만 오늘 내가 회식자리에서 했던 스킨쉽 정도는 술 취하면 있을 수 있는 사소한 일로 여기는 사람들이 는다면 이건 큰 문제가 아닐까. 이러한 이유로 2005년 청소년 성폭력 사건 보도 모니터링에 이어 2006년에도 성폭력 사건 보도 모니터링을 시작했다.    


봄 : 싹 띄우기


모니터링 작업의 시작은 모니터링 방법론에 대한 교육이었다. 여성주의, 성폭력, 언론 모니터링에 대한 8회 강의를 기획하여 4월 한 달간 강의를 듣고, 실제로 기사를 모니터링 해 보는 실습 과정도 거쳤다. 이 과정에서 5명의 자원 활동가를 만나 모니터링 팀을 꾸렸다.

작년 상반기에는 사회적으로 알려진 성폭력 사건이 많았고, 따라서 보도 건수가 예상보다 훨씬 많았다. 2006년 1월에서 6월까지 동아, 서울, 중앙, 조선, 한겨레 6개 신문에서 보도한 성폭력관련 기사는 총 381건. 짧은 기사 하나에 대해서도 하고 싶은 말은 많고 정리되지 않은 고민은 꼬리의 꼬리를 물었다. 모니터링 팀원들은 일주일에 두 번씩 하루 8시간의 분석모임을 강행하는 놀라운 의지로 381건의 기사들을 하나씩 검토했다. 분석결과는 전문가(1)들의 자문으로 더 정교히 다듬어 졌다. 세 달에 걸친 이 과정은 총 13개의 성폭력 보도 가이드라인과 이를 활용해 모니터링 한 110건의 지적 사례로 정리되었다. 10월 31일에 있었던 성폭력사건 보도 모니터링 심포지움 <나는, 성폭력을 이렇게 읽는다> 에서는 실제 기사 생산 현장에 적용 가능한 가이드라인을 만들기 위해 기자들을 토론자로 초대해 함께 토론했다.(2)  

여름 : 햇빛 받기

모니터링 결과는 다음과 같다.

->성폭력 보도 가이드라인과 분석 결과 보러가기1
->성폭력 보도 가이드라인과 분석 결과 보러가기2

「폭력의 성애화」는 특히 단신에서 두드러졌다. 단신 소재는 각 경찰서 담당기자가 경찰서를 통해서 주로 얻는다고 한다. 이에 대해서 심포지움 당일, 기자를 통해서 신고 된 성폭력 사건 모두를 기사화 할 수 없기 때문에 그 중 대중의 관심을 끌 수 있는 흥미위주의 사건이 기사가 된다는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실효성 없는 대책 부풀리기」역시 ‘전자팔찌법’과 같은 논란의 여지가 많은 대책을 내용 검토 없이 일단 표제로 띄우고 보는 선정적인 보도 형태다.  

지면신문 독자는 줄어드는 반면, 실시간 클릭 수로 결정되는 포털 사이트의 메인 뉴스와 게시판 중심의 새로운 언론 환경은 성폭력을 단지 조회수를 높이는 선정적인 도구로 활용하도록 한다. 이런 상황에서 공공성을 고수하며 기사를 쓰는 것은 어려운 일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언론시장의 현상-상황은 반성폭력 문화 확산과 피해자 인권 보장을 위한 언론의 공공성을 유보하는 핑계는 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정적인 표제와 삽화로 시선을 끄는 기사에 먼저 눈길을 주는 이들, 이 기사들의 조회수를 올리는 이들은 기사를 쓴 기자가 아니라 독자들이라는 것 또한 중요한 사실이다.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독자들이 아는 언어, 쉬운 말로 보도할 필요가 있다’는 어느 언론 관계자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이런 언론의 조건을 만들고 있는 것은 독자들이다.

언론 모니터링은 흔히 언론의 잘못을 비판하는 작업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성폭력 사건 보도 모니터링이란 잘못된 기사를 쓴 기자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기사의 내용을 분석함으로서 기자와 독자 모두에게 성폭력에 대한 인식을 성찰할 수 있는 다른 시각을 제시하는 기회다.

가을 : 열매 걷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모니터링 분석 결과를 대중에게 알리는 것이다. 상반기에 발생한 사건들로 성폭력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진 덕분인지 모니터링 분석 결과는 여러 언론에서 보도했고 심포지움 역시 성황리에 마쳤다. 특히 한겨레신문사는 내부적인 취재보도 준칙에 상담소에서 발표한 가이드라인을 반영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3). 가이드라인은 소책자로 제작해 각 언론사와 반성폭력 관련 단체에 배포했다.

2006년의 모니터링은 이렇게 마무리하였고 2007년 후속작업은 마련하지 않았다. 올바른 성폭력 보도를 권장하기 위해 매년 모니터링 결과를 발표하고 좋은 기사를 선정하는 작업이 중요하다는 등 많은 고민들이 있었지만, 상담소의 업무내용 상 체계적인 모니터링에 집중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물론 올해의 모니터링 결과를 언론이 어떻게 반영하는지에 대한 지속적인 모니터링은  할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좋은 후속작업은 이 글을 읽은 상담소 회원 한명 한명이 모니터링 활동가의 입장으로 성폭력 사건 보도를 읽는 것이 아닐까.

                                                                                                                       
(1) 민우회 미디어 운동 본부 소장 강혜란, 여성학자 권수현, 전 민우회 성폭력상담소 활동가 김영애.
(2) 토론자는 경향신문 권재현 기자, 한겨레 이유진 기자, 민우회 미디어 운동 본부 소장 강혜란, 여성학자 권수현.
(3) 2006.11.1 한겨레 <성폭력 보도 수칙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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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민우회성폭력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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