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실2007.08.30 11:52

성교육이야기

'남자=늑대'라는 교육은 이제 그만!

김영애 l 상담원

최근 다양한 영역에서 여성들의 사회적 진출이 늘어나고, 사법시험이나 교사 임용 시험 등 중요한 국가시험에서 여성들의 합격률이 더 높게 나오는 것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 누구도 여성과 남성이 능력 면에서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같은 조건이 주어질 때 여성이 남성보다 더 앞서는 요즘의 현상들을 보면서 남성들이 위기감을 느끼기까지 한다.
최근 이와 같이 공부나 운동 리더십 등 모든 면에서 남성을 능가하는 엘리트 여학생들을 ‘알파걸’이라고 하고 우리 사회에 부는 엘리트 여성들의 약진을 ‘알파걸 시대’ 라고 진단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OECD 75개 국가 중에서 여성권한 척도가 53위라는 여전히 불평등한 사회구조를 가지고 있는 우리 현실에서 알파걸이란 과연 어떤 모습일까? 미국의 심리학자 댄 킨들런은 알파걸들의 특징으로 구조적인 불평등 속에서 전통적인 성역할과 사회구조에서 벗어나 새로운 가치관으로 무장하고 있다고 말한다.

혹시나 신인류 알파걸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가지고 K여자정보산업고등학교에 성교육을 다녀왔다. 필요한 지식이나 정보는 인터넷 속에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는 그들에게 내가 성교육을 하는 이유는 그들과 소통하기 위해서이다. 소통의 경험이 자신을 성적 존재로 인정하고 스스로 자신의 의지에 따라 성적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힘을 키워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민과 현서는 사귄 지 100일정도 되었고 얼마 전에는 노래방에서 키스를 해 보았다’ 시작하는 지민과 현서의 스토리를 주고 ‘현서가 부모님이 안 계시다며 집으로 초대를 했고 지민은 현서의 집에 가고 싶기는 한데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에 대해 조별 토론을 하도록 했다. 의견은 현서의 집에 ‘가도 된다’와 ‘가지 말아야 한다’로 나뉘었고 ‘가도 된다’ 쪽이 약간 많았다.

‘가지 말아야 한다’는 이유에는 ‘남자는 동물(늑대)이다, 집은 위험하다, 집에서 만나면 절제가 안 된다, 남자들은 충동을 제어하지 못한다’ 와 같이 현서가 성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동물로 변해 위험해 질 수 있을 것이라는 공포가 담겨져 있었다.

‘가도 된다’는 의견에는 ‘무조건 의심하기보다는 친해지는 계기로 삼는다, 함께 있고 싶으니까, 건전하게 놀 수도 있다’ 와 같은 이유가 있었지만 남자친구가 이상한 짓(?)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을 배제하지는 않았다. ‘호신용품을 챙겨서 간다/ 친구(부모님)와 함께 간다/ 건전한 놀거리를 찾는다/ 재미있는 대화를 끊임없이 한다/ 이상한 행동을 하려 하면 거부한다/ 나의 의사를 당당하게 밝힌다/ 강제로 하면 방어하고 신고하고 끝낸다’ 등의 답이 함께인 것이다. 소수의 의견으로 이성관계에서는 믿음이 중요하다는 것과 남성들을 다 늑대로 보지 말라는 의견이 있긴 했지만 대체로 남성들은 흥분하면 절제가 안 되고 여자는 당할 수밖에 없고 당하면 여자들만 손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애초에 정답이 있는 토론이 아니었기에 모두 훌륭한 답변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결과를 보면서 새삼 당황스러웠던 이유는 너무나 낯설지 않은 결론이라는 것이다.
마치 내가 고등학생이 되어 그 자리에 함께 있는 것과 같은 착각이 들었다. ‘남성의 성은 강하고 자연스러워서 그런 남성과 단 둘이 있는 것은 매우 위험한 것이니 여성들이 스스로 몸조심을 해야 한다. 왜냐면 여성의 순결은 매우 중요하니까’ 라는 익숙한 얘기. 그러나 바로 이런 통념이 남성들에게 성충동을 조절할 당연한 책임을 유기하게 했고 폭력적인 성관계에 면죄부를 주었으며 그 책임을 피해자인 여성에게 돌림으로써 성폭력 피해 여성들이 죄인이 되는 모순을 가져왔다. 
    

남성의 늑대로서의 권리 앞에 여성이 No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해서 여성들의 안전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고 여성들이 성적인 면에서 당당해졌다고 볼 수도 없다.
남성들이 여전히 늑대로 존재하는 한 여성들의 No는 남성들에게 강력한 도전의 의지를 다질 계기만을 줄 뿐이다. 진정한 거부는 Yes라는 선택지와 함께 있을 때, 그래서 Yes와 차별적인 No의 의미가 제대로 전달 될 수 있을 때 성립한다.
여성이 평등한 성적자기결정권을 가지는 것은 Yes와 No를 넘어서 때로는 상대방에게 Yes와 No를 들을 수 있는 제안을 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질 때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런 권리를 가지고 있었던 남성들에게 한번도 알파보이라고 하지 않았음에 견주어 볼 때 ‘알파걸’에 대한 호들갑은 그저, 당연하지 않은 것의 출연에 대한 주목이 아닐까.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Posted by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민우회성폭력상담소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