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실2008.02.14 13:47


||| 산책 |||


스무 살 딸과의 유럽여행


권현주 회원


 지난 늦여름과 초가을에 걸쳐 20일 동안 딸과 프랑스 영국 이태리를 배낭여행 했다. 이번 여행에서 많이 느끼고 생각하게 한 도시는 파리였다. 평소 파리를 극찬하는 의견과 파리를 폄하하는 두 극단적인 평가들을 들어왔었다. 내가 들은 바로는 파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비교적 유리한 조건(관광객이라던가)으로 파리에 머무는 사람들이나 젊은 세대들이라고 한다. 하지만 파리에서 짧게 든 길게 든 생업에 종사하거나, 열약한 조건을 가지고 머무는 사람들은 그 이면을 더 많이 보게 되는 것 같다.


 파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파리 사람들의 자유롭고 개성 있어 보이는 모습과 그들이 표방하는 똘레랑스 같은 타인에 대한 관용 의식에 공감한다. 또 사람들의 세련된 치장과 도시의 외형적인 화려함에 반하기도 한다. 그러나 두발로 걸으면서 그들의 생활과 부딪치며 여행하면 오래 걸리지 않고 그 이면을 쉽게 경험하게 된다.
 예를 들면 거리에서 흔히 만나는 오래된 인종차별 (허드렛 직업은 어김없이 흑인이고 거리의 걷는 쌍쌍의 사람들은 모두 백인끼리, 혹은 흑인끼리 라는 것), 그리고 일반상점이나 숙박업소마다 일관성 없는 자신들의 유리한 관리 조건을 일반적인 매너라고 생각하는 점, 겉으로는 게스트를 위한 편의 시설처럼 해 놓고도 막상 이용하려고 하면 누가 그 시설에 접근하는지 확인하고 있는 쫀쫀함. 원래 여러 인종이 모여 사는 곳이고 다양한 여행객들이 오고 가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문화적 차이로 인해 실수를 했을 때 그것도 모르냐는 단호한 시선을 보내는 모습, 명품을 제외한 일반 물건 중 좀 싸다 싶으면 어이없는 품질불량, 또 뭐라 말하기 힘든 묘한 지저분함도 화려한 메인도로의 뒷길, 식당, 숙박업소에서 쉽게 느끼게 된다. 이런 것들에 주목하면서 나는 안티 파리 의식에 공감했고 나의 딸도 나와 같은 분위기를 느끼게 하려고 애썼다.


 나는 평소 나의 딸이 겉으로 보여 지는 무엇보다 이면의 내용을 보고, 허상을 가려 볼 줄 아는 사람, 허영심에 빠지지 않는 사람이 되기를 바래왔다. 이런 평소의 바람 때문에 파리에서 줄곧 그랬나 싶다. 파리 외곽도시의 큰 벼룩시장에서 정신없이 물건을 고르는 나와는 달리, 꺼림칙하고 더럽다고 생각하여 잘 만지지도 못하는 딸이 난 못마땅했다. 딸은 나의 그러한 마음을 알아채고 지레 자신을 된장녀라고 생각하나 싶어 서로 불만스러워했다. 결국 우리는 큰소리로 싸움도 했다. 싸워도 알아듣는 사람이 없겠지 했는데 갑자기 ‘여기까지 와서 싸우네’ 라는 소리가 들려 둘 다 멈칫하기도 하면서.


 역시 함께하는 여행은 ‘따로 또 같이’가 적절해야 함을 역시 또 깨닫는다. 음악을 좋아하는 우리 모녀는 파리의 재즈 바에서의 라이브 공연을 본 것과, 런던에서의 뮤지컬 맘마미야 감상은 서로 만족 100%였다. 그러나 차이 나는 수면시간, 옷차림새, 먹거리의 종류 앞에서는 번번이 협상을 해야 했다. 딸이 자기가 원하는 대로 여행을 즐기고 싶어 한 만큼 나도 내가 원하는 대로 여행을 즐기고 싶은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엄마인 나로서는 일방적으로 딸을 배려해야 했다. 딸이 심각한 눈병을 숨기고 약을 타서 온걸 알게 된 후로는 하루하루 딸의 눈 상태를 살펴야했고, 아침에는 잠이 많은 딸이 일어나는 시간을 무료하게 기다려야 했고, 저녁엔 밤의 문화를 즐기고 싶어도 매번 딸의 컨디션을 살펴야 했다. 매일 밤 숙소 주변의 벤치에서 맥주 한 캔과 또 다른 나의 기호품이 내가 유일하게 휴 하면서 쉬는 나만의 시간이었다. 사실 참 힘들었다. 무거운 짐과 엄마라는 책임감을 끌고 다닌 일곱 번의 대이동 끝에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얼마나 안락함을 느꼈는지 모른다. 시간되면 밥도 나오고 앉아서 영화도 보고, 술도 주고 간식도 나오고 잠 오면 자면 되니 말이다.


 여행의 막바지, 몸도 많이 지치고 한국 음식에 대한 그리움도 사무칠 무렵 이태리 밀라노 독도 민박에 묵게 되었다. 키 150정도의 조선족 남자주인이 운영하는 곳이었다. 그 남자 주인이 깨끗하고 쾌적하게 관리하는 휴식처와 그가 만드는 음식은 고생 끝에 도착한 여행자에게 너무나 푸근했다. 그가 아무 계산 없이 하는 말은 참 철학적이었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다른 민박과 비교하여 시설이, 특히 화장실이 아주 좋다고 다른 곳에서 묵어본 한국인들이 이구동성으로 그의 집을 칭찬했다. 그럴 때 마다 그는 “사람이 먹는 것 하고 싸는 것은 잘해야 되” 라며 기본을 갖추었을 뿐이라는 듯 대답했다. 또 저녁 늦게 맘 맞는 사람끼리 술자리가 벌어졌을 때, 술을 못 마시는 그에게 술 권할 때 거절하면 상대방이 기분 나빠하지 않느냐고 누군가 물었다. 연변 사투리로 들려오는 그의 명쾌한 대답. “자기가 권하는 술 못 마신다고 삐지는 사람하고는 안 어울리면 되. 그게 무슨 기분 나쁠 일이야.” 머무르는 동안 아침마다 어설프게 잠깬 이불 속에서 그가 아침 밥하는 소음을 참 행복하게 들었다. 돌아오면서 묘한 서운함에 나는 그에게 “당신은 빅맨”이라고 말하고 훗날의 여행을 기약하며 돌아왔다. 누군가 내게 말했다. 여행가면 그냥 구경이나 하지 뭘 그런 것을 느끼려 하냐고. 하지만 아직은 관광보단 그래도 여행을 하고 싶다. 물론 나이도 있으니 중간 중간 관광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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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민우회성폭력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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