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실2008.02.14 13:54


||| 상담소 + 사람들 |||


우리들의 10

이번 호 상담소+사람들에서는 10년 이상 상담자원활동을 하고 있는 강현주, 김경숙, 주설령 님을 만났습니다. 김경숙님의 빨간 까페 플로리안에서 모여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많은 이야기를 나눴답니다. 상담소 활동가 오이와 먼지, 민우회 대표 생기가 인터뷰 진행을 위해 이 자리에 함께 했고요. 10년의 자원활동. 참 멋지지요? 그녀들의 10년을 채워왔던 것들이 궁금하시죠? 민우회 회원이라는 새로운 이름이 그녀들을 어디로 데려다 놓았는지, 같이 들어봐요. (역시 10년 동안 상담소와 함께 했던 이금련 님도 이날 같이 만나고 싶었지만, 개인 사정으로 인터뷰에 함께 하지 못했답니다. 아쉬워요~)  


정리 | 먼지 (상근활동가)


나의 시작은?

김경숙 처음은 민우회 생협 활동으로 시작했다. 이웃에 살던 유송화씨가 민우회 생협을 알려줬는데 생협 물건을 들고 와서 같이 먹기도 하고. 생협에서 목삼겹살을 구워주는 시식회를 했는데 그 때 갔다가 먹어보니 너무 맛있어서 포섭 됐다^^. 그 때 같은 지역 생협 조합원들끼리의 공동체가 있었는데, 그게 진짜 재밌었다. 10명 정도, 나이든 사람도 있고, 젊은 사람도 있고. 애들이랑 집에서만 지내던 여자들이 같이 모여서 사는 이야기도 하고 뭔가 해보자 하고 으쌰 으쌰 하니까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는 거지. 서로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간접경험도 많이 하고, 7시에 만나면 12시까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하고 생협 물품을 나누면서 놀았다. 그렇게 생협 활동 하면서 동북 민우회에서 하는 부모역할훈련에 참여도 하고, 그러면서 민우회 활동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상담원 교육도 받고.

주설령 난, 처음에는 애 때문에. 동북 민우회에서 비디오 촬영하는 것을 가르쳐 준다니까, 민우회가 뭔지도 모르고 그냥 우리 애 비디오 찍어 주고 싶어서 갔었다. 그러다 틈틈이 다른 교육도 듣고, 단체 분위기도 느끼면서 그냥 애 비디오만 찍을 게 아니구나 싶었다. 이 기술로 지역사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구나 하면서 생협 비디오를 찍게 됐다. 그러면서 생협을 알게 되고, 이 운동이 중요하구나 느끼게 되고. 생 쓰레기 퇴비화 운동도 하고, 비디오도 제작하고. 그러다가 동북 민우회에 상담소가 생겼고 신경혜 선생님이 권해서 상담소 활동을 시작하게 됐다.

강현주 민우회 활동을 하고 있던 친구가 나에게 상담원 교육을 권했다. 넌 오지랖도 넓고 하니까 이런 활동이 딱이다 그러면서^^. 상담원 교육은 정말 놀라운 경험이었다. 여성주의니 상담이니 이런 것들을 전혀 모르다가 새로운 이야기들을 듣게 된거지.   
  
주설령 교육 받으면서 사실 혼란스러운 것도 있었고. 하지만 무엇보다, 주부가 그냥 집에서 살림하는 사람인 게 아니라, 가치 있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 가사노동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런 것들이 내게 힘을 줬다.


상담?

주설령 막상 상담을 한다는 게 두렵긴 했다. 근데 뭣보다 같이 상담을 하는 자원활동가들이 친했으니까. 친밀함이 주는 힘이 컸다. 선배 상담원들을 보면서 배우는 것도 많았고.


강현주 부부간 있었던 문제들, 남편이 매일 술 먹고 늦게 들어와요 등등, 그런 고민들을 말하면 내가 대처하는 방법을 얘기했었다. 그럴 때는 참지 마시고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밀고 나가시라, 그러면 내담자가 네 알았습니다. 그러면서 같이 신이 났었는데. 근데 그런 상담 내용으로 수퍼비전을 받으면 수퍼바이저가 다 체크해서 사람마다 대처법이 다르다며 지적을 하고. 그런 슈퍼비전이 좀 답답하기도 했다.
 
김경숙 나는 처음 받았던 상담이 쎘다. 18년 동안 아내폭력을 가하던 남편을 언니가 죽여서 교도소에 있는데 도울 방법이 없겠냐며 동생이 전화를 한 거였거든. 상황은 너무 절박한데, 내가 당장 그 교도소에 찾아가서 본인을 만나 막 지원을 하고 그럴 수도 없을 것 같고. 며칠 동안을 밥도 못 먹고 힘들어만 했다. 상담하기도 싫고. 근데 같이 활동하던 자원상담원한테 얘기 했더니, 너 정말 힘들었겠다. 어째야 할지 몰랐겠다. 하면서 내 힘겨움을 공감해 주더라. 오히려 내가 상담을 받게 된 거지. 그런 위로, 서로 상담자도 되고 내담자도 되는, 그게 힘 이었다. 그러면서 상담에 관한 교육 같은 거 있으면 열심히 들으러 다니고. 그땐 다들 열심이었다. 주마다 한 번씩은 상담 이론 스터디하고. 그 5년 정도가 내 인생에 있어 최고로 공부를 많이 한 기간이었다^^.

주설령 초등학교 3학년 때 친부 성폭력이 있었던 것을 덮어놓고 잘 살아왔는데 지금 너무 힘들다는 내담자를 만나면서 ‘네 잘못이 아니다.’ 그 이야기를 했던 게 서로에게 힘이 됐던 것 같다. 아, 이런 느낌이 상담이구나 느껴지고, 내담자에게 힘을 주는 게. 뿌듯했다.

김경숙 전화 연속 상담 중에 보람 있었던 상담이, 고학력 남편에 비해 저학력과 자원 없음에 주눅 들어 괴로워하던 내담자랑 계속 같이 이야기를 했던 게 있다. 근데 또 남편 학비를 이 여자 분이 돈 벌어서 대고 있고. 그래서 진짜 당신이 하고 싶은 것은 뭔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아이들에게 관심이 있다고 해서 보육교사를 권하고, 그 공부하는 과정에서 계속 소식을 주고받고. 남편 출장 겸 여행을 간다고 해서 가서 꼭 혼자 돌아다니면서 경험을 많이 쌓으라고 이야기도 하고. 어린이집을 열었다는 소식까지 듣고.   

상담소!

김경숙 상담소에 올 때면, 동북 민우회에서 만난 자원 활동가 다섯 명이 차 한 대를 타고 같이 다녔다. 그러면 차타고 가면서, 오늘은 상담소 가지 말고 어디 가자, 어디로 갈까. 시어머니랑 싸운 이야기, 애들이랑 싸운 이야기하면서, 주설령이 맨날  커피 싸와서 나눠 마시고. 근데 꼭 상담소 가야 된다는 사람이 한 명씩 있다^^ 그러면 결국은 언제나 상담소에 가는 거지. 하지만 가는 그 길에 매번 일탈을 꿈꾸면서 얼마나 재밌었는지!

강현주 가자고 했던 그 누군가는 나였다^^ 그 때 난 상담원 모임 장이었으니까. 역시 책임감을 부여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땐, 매번 운전하는 사람이 어떻해? 지금 차 돌려 말어? 영종도로 빠져? 그러면서도 상담소에 가고. 함께 있었던 그 사람들이랑 시간이 좋다.


민우회

주설령 누군가에게 힘을 준다는 것도 좋지만 내가 많이 변한 거. 그게 제일 좋다. 전업주부로 살다가 사회활동을 하고. 엄마는 매일 집에만 있던 사람들이다가 아이들, 남편도 내가 하고 있는 일이 가치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나를 자랑스러워하고. 내가 이렇게 달라지면서 내 가족들의 삶도 많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상담을 내가 얼마나 잘했다 못했다 그런 건 사실 잘 모르겠고^^
 
강현주 난 투쟁적이 됐다. 친구들한테도. 친구들이 무심코 하는 얘기를 듣다가 흥분해서, 동성애가 뭐? 동성애가 너한테 뭐 어쨌는데? 호주제 땜에 니가 좋은 게 뭔데? 도발적인 질문들도 던지고 많이 싸우고 그랬다. 갑자기 똑똑한 ‘척; 한다고 친구들이 뒷담화도 했다지만^^. 말하는 방법이 거칠어서 그랬지 내 말 듣고 생각 많이 했다고 말하는 친구들도 있었고.   

김경숙 상담을 하다 보니 내 자신이 솔직해지는 것. 솔직한 게 부끄러운 게 아니다. 솔직함이 갖는 무기가 크구나. 그게 너무 고맙고 좋다.

 자원활동 10년! 자원활동가의 원동력은?


김경숙 자기발전. 모델이 되는 다른 자원상담원들을 만나면서 자신을 깨야지. 내가 이게 아니구나, 아니구나. 자기를 들여다보면서

강현주 난 그렇게 성찰하는 분위기는 아니고^^, 원래 좀 널널하고 열려있는 사람이라고 느껴왔는데 그걸 민우회가 더 확장시켜준다. 동성애. 호주제. 이런 구체적인 것들을 민우회에서 알게 되면 바로 흡수하는 거지.


마지막 한마디

김경숙, 강현주 우린 말 다 했어. 주설령 쌤이 한마디 해요.

주설령 음…. 술값은 내가 낼까?^^ 

재밌었나요? 한정된 지면 탓에 많은 이야기를 덜어내야 했던 담당자의 마음은 아쉬움으로 가득하지만…. 인터뷰를 함께 했던 오이의 마지막 말로 이번 상담소+사람들을 마무리합니다. “쌤들 참 좋아요. 이 진심이 전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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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민우회성폭력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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