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실2008.02.14 14:22

||| 상담소의 눈 |||


폭력과 관계사이

스토킹을 법으로 금지한다는 것?

이임혜경 |소장


 어떤 사람의 일방적인 행동이 내 일상을 불안, 공포로 감싼다. 하지만 그 사람과 대화가 통하지 않고 이성적인 대응이 먹히지 않는다. 내가 그 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뾰족한 수가 없다. 무력하다. 관련 정보를 다 끌어다 모아 봐도 나를 위협하고 있는 목소리 하나 잠재울 대책이 없는 현실. 답답하다.
 이런 스토킹 상담 내담자의 무력감과 답답함, 고통은 고스란히 상담소의 고민으로 던져지고 그 대처, 해결방법에 대한 논의는 항상 반복된다. 그리고 현실적인 대책을 고민하며 자연스럽게 법을 통한 제재와 처벌을 떠 올리게 된다. 하지만 막상 구체적으로 스토킹에 대한 형법적 규제를 구상하다보면 여러 가지 질문에 봉착하게 된다.


 애정 공세에서부터 물리적 위협과 폭력까지 스토킹의 유형과 범주는 넓고, 매 사례마다 다른 상황과 맥락, 현실을 담고 있다. 연애를 하다보면 너도 하고 나도 하게 되는 일방적 행동과 범죄로서의 스토킹을 어떤 선을 그어서 구분할 수 있을 것인가? 예를 들면 헤어지기 싫다고 매달리는 수차례의 전화와 스토킹과의 경계는 무엇으로 긋나? 2번까지는 괜찮고 3번째 전화부터 스토킹인가. 어떤 기준을 세울 수 없는데 과연 법의 관여가 가능한가? 또한 법이 스토킹 행위를 실제로 막을 수 있을지, 법으로 과연 다양한 가해자(스토커) 행태들에 대한 구체적인 제재가 가능하기나 할 것인지도 의문이다.
 이미 스토킹 행위 규제법을 제정하여 시행하고 있는 외국의 입법례 과정에서도 비슷한 논쟁의 과정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또한 많은 국가에서 스토킹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금지되어 있지만 전 세계 어디에도 비판과 문제제기로부터 자유로운 스토킹 방지법은 아직 없다고 한다. 하지만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겠는가. 의문들은 있지만, 일단 외국의 스토킹 방지법을 간략하게나마 살펴보며 그 의문점에 대한 실마리를 찾아보자. 나아가 한국에서의 법 제정 방향도 모색해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나를 괴롭히지 마시오
 현재 미국, 영국, 호주, 일본 등 4개국에서 스토킹 방지법이 제정되어 시행되고 있고 대표적으로 꼽히며 자주 자료에 인용되고 있다. 1990년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세계 최초로 스토킹 방지법을 마련, 92년부터 미국의 각 주에서 스토킹방지법을 제정하였고 93년에는 스토킹방지법 모델법전(일명 모범 스토킹방지법)이 발표되었다.


 미국 각 주의 스토킹방지법은 스토킹을 정의하고 규제하는 방식에 있어 다소간 차이를 보이는데 첫째, 스토킹에 대한 전형적인 정의는 고의성, 악의성, 반복성을 갖고 따라다니기 및 괴롭히기이다. 또한 스토킹을 판단함에 있어 피해자가 생명 또는 신체에 대한 상당한 공포를 느낄 것을 요구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주요한 비판 가운데 하나는 피해자가 심리적 위협으로 고통을 받는다 할지라도 그것이 죽음이나 신체적 상해에 대한 두려움에 이르지 않는 경우 기소가 어렵다는 것이다. 둘째, 스토커에 대해 많은 주에서는 스토킹과 가중적 스토킹을 구분하여 규정하고 있는데, 가중적 스토킹이란 무기를 소지하거나 신체상해를 포함한 위험한 행위를 수반하는 경우를 지칭하는 것으로 중죄로 취급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셋째, 많은 주에서 보호명령을 위반한 경우 영장 없이 체포할 수 있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반드시 이런 경우가 아니더라도 일정한 요건 하에서 영장 없이 체포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 넷째, 일부 주에서는 스토커의 석방 시 피해자에게 통지도록 규정하고 있고, 어떤 주에서는 스토킹 유죄판결을 받는 자에 대해 그 DNA 견본을 제공받아 보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호주도 93년부터 스토킹방지법이 각 주 및 지방정부에 의해 제정되기 시작, 미국처럼 주마다 다른 스토킹 방지법을 가지고 있고 대부분 스토킹에 해당하는 행위유형을 구체적으로 열거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예를 들면, 누구든지 2회 이상 ⅰ)타인을 미행하거나 ⅱ)타인의 주거 또는 자주 가는 장소 부근을 배회하거나 ⅲ)타인 소유의 물건에 침입 혹은 간섭하거나 ⅳ)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물건을 주거나, 그 타인이 발견할 만 하거나 그의 주의를 끄는 장소에 놓아두거나 ⅴ)타인을 감시하거나 ⅵ)기타 합리적으로 판단해볼 때 타인의 염려나 두려움을 야기할 것으로 생각되는 행위를 하고,
 그 사람이 ⅰ)타인이나 제3자에게 중대한 신체적 혹은 정신적 해악을 야기하려는 고의를 가졌거나 ⅱ)중대한 염려나 두려움을 야기하려는 고의를 가졌을 때 스토킹을 범한 것이다. 이 때 스토킹이 성립하려면 그러한 행위가 피해자에게 영향을 미치려는 고의에 의한 것임을 입증해야 한다는 점에서 미국과 같지만 고의의 내용은 미국에 비해 한층 완화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의를 입증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는 지적에 따라 이에 대한 개정작업을 진행하였다.


 1997년에 제정된 영국의 ‘괴롭힘 금지법’은 다른 나라와 비교해 가장 느슨한 형태를 갖고 있다. 규정하고 있는 내용은, 누구든지 1)타인을 괴롭히고, 2)타인에게 괴로움이 되리라는 것을 알거나 알았어야만 하는 일련의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괴롭힌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특별히 개념 정의는 없다. 이런 법이 가능하다는 것이 놀라울 정도로 금지되는 행위의 범위를 넓게 설정하고 있는 것이다. 2)번의 행위란 ‘일련의 행위에 의해 최소한 2회 이상 타인으로 하여금 공포심을 느끼도록 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 행위자가 각 경우에 자신의 행위로 말미암아 그 타인이 공포심을 느낄 것이라는 점을 알거나 알 수 있을 경우’라고 정의하며 중죄로 취급하고 있다. 또한 고의는 필요하지 않고, 그 대신 ‘동일한 정보를 가진 합리적인 사람’이 괴로움을 느꼈겠는가를 판단의 근거로 삼는다. 행위자 스스로 자신의 행위가 타인에게 괴로움을 끼친다는 사실을 실제로 알았는지를 입증할 필요가 없다.
 ‘원치 않는 집요한 행태’라면 피해자에게 끼친 영향에 따라 괴롭힘이 될 수 있고, 따라서 그러한 행태가 폭력으로 발전하기 이전에 경찰의 개입을 허용한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예상할 수 있는 것처럼 광범위성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었고 남용 위험성에 노출되어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또한 동법에서 스토킹의 범죄적 요소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가 불분명하다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영국의 한 대학에서 흥미 있는 연구가 진행된 적이 있었다. 대학생들에게 다양한 사례와 위의 법률들을 제시, 설문을 통해 스토킹을 법률적으로 어떻게 정의하는 것이 일반인의 인식에 가장 잘 부합하는지, 법률 문외한이 스토킹에 대한 정의를 이해할 수 있는지를 살펴본 내용이다. 결과에 의하면 선입견과는 달리 법률 문외한들도 스토킹 방지법을 해석할 능력이 있으며, 이는 자신들이 경험한 사건의 고소여부를 자신들의 상식에 따라서가 아니라 법령의 내용에 따라 판단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예를 들면,  


 [사례] 최근 들어 한 남자가 부르지도 않았는데 막무가내로 우리 집에 걸어 들어온다. 때로는 쫓아내기도 어렵다. 그와 시시덕거리는 사이로 시작하긴 했지만 나는 그의 행동이 부적절하다고 생각해서 우호적이기는 하지만 약간 냉담하게 대했다. 나의 태도를 인정할 수 없는 건지 수용할 수 없는 건지 그는 내게 으시시한 시들을 써 보내기도 하고 한번은 위협적이고 주술적인 사고로 가득 찬, 나를 괴롭히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몇 주 뒤에는 이런 행태가 멎었다. (이기헌, ‘스토킹의 형법적 규제에 관한 비교법적 고찰’, 인용)  


 위 사례에 대해 영국의 괴롭힘 금지법 조건하에서 학생들은 스토킹이라고 답한 경우가 가장 높았고 미국 모범 스토킹방지법 조건하에서 가장 낮았다. 그 남자가 여성에게 폐를 끼친 것은 분명하지만 그녀가 직접적으로 신체적 상해나 죽음을 두려워 할 이유는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 방지법 하에서는 그녀가 그 남자를 고소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영국의 괴롭힘 금지법 하에서라면 그의 행태는 기소되기에 충분할 만한 괴롭힘을 끼친 것이다.


 또한 이 연구에서는 스토킹에 대한 엄격한 법률적 정의를 담지 않고 스토킹이 피해자에게 미친 영향에 치중한 영국의 금지법이 스토킹 범죄에 대한 일반인의 직관적 인식과 가장 잘 부합된다고 밝히고 있다. 물론 남용의 가능성은 비판의 지점이고 입법의 내재적 위험성은 명백하다. 때문에 법령에 스토킹을 구체적으로 정의할 것인가 그냥 느슨한 틀을 유지할 것인가에 대한 논쟁은 계속되었다. 그러나 이 법의 장점은 오히려 스토킹을 조기 차단하여 법원의 심리에까지 이르는 것을 방지하는데 효과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떠한 경우 경미한 괴롭힘은 행위자를 엄중 경고함으로써 그 행위가 더욱 심각한 스토킹으로 발전되는 것을 중단시키는 것으로 충분할지도 모른다. 물론 이것은 우리에게도 논쟁의 지점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스토킹 논의, 확장되고 검토되다
 스토킹의 ‘범죄’화, 가해자를 처벌하고 스토킹을 예방하기 위한 법을 제정하기까지는 그 기반이 되는 의식과 동기가 필요하다. 실제 스토킹 방지법을 시행하고 있는 다른 나라의 경우를 봐도 스토킹이 구애전략이나 인기인에 대한 흠모 정도로 가볍게 여기고 초기 단계에 형법적 개입을 하지 않을 경우 이미 형법에서 규정되어 있는 범죄(폭력, 살인 등)로 발전할 위험성을 알게 되어 스토킹을 초기에 차단해야 할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높은 상태였다. 또한 스토킹이 타인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것이며 누적되면 피해자에게 심각한 정신적, 사회적 피해를 초래한다는 점, 즉 피해자에게 미치는 해악에 대한 감수성이 있었다.


 그리고 스토킹의 본질이나 스토커의 행태가 알려짐으로써 스토킹을 염두에 두지 않고 제정된 기존의 처벌규정(한국의 경우 경범죄처벌법, 성폭력특별법, 형법 등)은 스토킹 방지에 부적절하고 무력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예를 들면 스토킹은 반복, 누적으로 형성된다는 점이 특징인데 대부분 개별적 행위의 규제를 염두에 둔 기존의 형법상으로는 가벼운 행위는 아예 처벌규정이 없거나 경범죄 정도에 해당하는 것이 고작이어서 단속의 실효를 거둘 수 없고, 중대한 행위에 대한 기존의 처벌규정을 이용하게 되면 때가 너무 늦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1999년, 2003년 두 차례 스토킹 방지 법안이 국회에 제출된 적이 있었으나 통과되지 못하고 폐기된 경험이 있다. 그 당시 법안 자체가 충분히 논의, 연구되지 못했다는 한계점을 갖고 있기는 했으나 무엇보다 스토킹에 대한 초기 차단의 필요성, 스토킹 피해에 대한 심각성이 공론화 되거나 동의를 얻거나 법의 필요성이 사회적으로 설득되지 않았었다고 판단된다.


 때문에 이 글은 무조건 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스토킹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일으키고 법적 검토와 합의를 이끌기 위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적어도 외국의 사례처럼 스토킹이 정의되고 유형화되는 성과가 있을 수 있고, 성적자기결정권 침해의 문제에 대한 구체적이고 대중적인 토론의 장이 될 수도 있다. 또한 스토커들의 행태들을 드러내는 과정은 남성중심적 연애각본이나 가해자성 등 많은 토론과 논쟁을 일으키니 이 역시 변화를 만든다는 점에서 의미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스토킹에 관한 외국 자료를 검토하는 과정 중 다른 나라 스토킹 유형과 차이가 나는 한국만의 독특한 특징을 발견하게 되었다. 집요한 전화걸기, 음란전화, 따라다니기, 기물을 파손하며 겁주기, 자해, 자살의 위협 등은 각 나라마다 비슷하게 드러나고 있는 스토킹 행태이다. 그러나 유독 한국만이 성관계, 임신, 성관계 동영상, 낙태, 과거 연애사 등 주로 여성의 성적 경험에 관한 것을 가족이나 주변인들에게 폭로하겠다는 협박이 스토킹에 동원된다. 이런 협박은 남성 스토커들이 여성에게 사용하며 실제 피해 여성에게 공포와 위협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은 상담을 통해서나 최근 인기 연예인의 사례에서도 볼 수 있다. 누구나 성적 존재로 행동하며 살아가는데도 여성이 성적 행위자일 경우 이를 빌미로 협박을 할 수 있고, 위협을 받게 되는 어이없는 상황이다. 이는 한국 사회가 얼마나 여성의 성(섹슈얼리티)에 대해 이중적 잣대를 갖고 통제하는 규범들이 존재해 왔었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으며, 실제 스토킹을 더 심각한 문제로 만드는 역할로 작용하고 있다.


 이와 같이 성(섹슈얼리티)의 문제를 비롯한 스토킹방지법과 관련한 논쟁들을 하나씩 구체적으로 드러내며 사회적으로 활발히 얘기되기를 바란다. 바로 이것이 기반이 되고 변화가 되어 스토킹을 막는 현실적인 대안이 될 것이다. 

Posted by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민우회성폭력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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