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소ing2009.06.23 16:19

숏버스길게 달린다~'  _ by 행

 

 

 

처음 이 영화의 한글 제목을 봤을 때, 숏버스(shot-bus)인 줄 알았다. 네티즌의 리뷰에서 (性)에 대한 예술 영화라고 하길래, 왜곡된 성 관념에 직격탄을 날리는 (shot)버스일지도 모른다고, 나 홀로 시나리오까지 구상하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영화를 보니 포탄의 굉음이 난무할 것 같은 숏버스(shot-bus)쇼트버스(shortbus)였다.  (여기에서 <외래어 표기법> 3장을 거론하며 영화제목의 맞춤법이 틀렸다고 지적하면, 너무 썰렁한지?)

 

하지만 솔직히 숏버스쇼트버스든 아무래도 상관 없었다. 존 캐머런 미첼 감독의 그 버스, 성별이나 인종, 나이, 직업이 모두 혼재되어 어떤 위계질서도 없는, 그래서 2009년의 지구별에는 존재할 것 같지 않은 아주 아주 쇼트(short) 한 이상세계인 동시에, 영화 한 편에 고스란히 배어있는 멋진 영상, 음악, 대화는 내 가슴을 일격하는 숏버스였으니까. (그리고 숏버스(shortbus) 어딘가 모자라고 남들과 다른 이들을 가리키는 미국의 은어라고 한다. 기왕에 은어인 바에야 쇼트버스거나 숏버스거나 언외(言外)의 참뜻을 탐문해야 하리라.)

 

 

 

영화의 전반부가 흘러가는 내내, 도대체 오르가슴이 뭘까, 나도 궁금했다. 만약 이 영화가 오르가슴 특권층이 불감증 사람들을 소외시키는 난 해봤다~ 난! 잘났다~식의 영화였다면, 숏버스는 포르노 판정을 받았을 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이 영화가 포르노의 경계선을 아슬아슬하게 넘어서며 예술영화로 승화된 가장 큰 이유를 손꼽으라면, 오르가슴에 대한 평화적인 메시지라고 말하고 싶다.

 

내게 포르노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정의할 수 있겠지만, 그 중의 한 가지는 오르가슴을 이용해서 돈 벌려는 수작이라고 일컬을 수 있다. 하지만 존 캐머런 미첼 감독은 포르노 산업에 정면으로 맞서는 새로운 오르가슴을 제시하고 있었다. 영화의 대사를 인용하자면, 오르가슴이란 밖으로 에너지를 쏘아내는 그런 느낌, 다른 사람의 에너지와 합해지고 전쟁은 사라지고 평화만 있는 느낌인 것이다.

 

섹스를 통한 모든 것과의 화해, 소통, 공감 겉으로는 온갖 근엄함을 위장하고 있으면서도 속으로는 성폭력과 매매춘으로 찌들어있는 한국사회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새로운 섹스의 세계이다. 영화 대사 중 뉴욕은 새로운 것들을 기꺼이 받아들이려고 귀 기울이는 장소라고 조금 오만한(?) 뉴요커의 뉴욕 예찬을 들으면서, 뉴욕과 서울의 간극은 얼마나 까마득한지 눈앞이 캄캄하다. 하지만 영화 마지막 부분의 장면, 정전된 뉴욕의 집들에 하나 둘씩 불이 들어오면서 온 세상이 빛으로 가득 차는 그 장면은, 언젠가 서울광장을 가득 채운 촛불의 무늬와 연결될 희망이 보이기도 하다. 서울광장의 그 촛불이 오르가즘의 촛불로 불타오를 때, 나는 들을 것이다. 숏버스가 사람들의 소통과 공감의 긴 연대 길을 달려가는 소리를 .  Long long long…… 부르릉~ ^^

 

 

서울의, 한국의, 지구별의 숏버스가 함께 달릴 날은 언제일지 모르지만, 지난 6월의 세 번째 화요일, 그 멋진 하루였던 민우회의 숏버스는 내 인생의 추억에서 이미 길게 달리기 시작했다. 아직도 귓가에 잔잔한 영화 음악의 한 소절을 흥얼거리며

 

넘어지면 일어서게 붙들어 줄 거지요? …… 만약 춥다면 옷을 따듯하게 입혀줄 거죠?...... 조화로운 멜로디로 공기를 채울 거에요. 이 모든 것들이 영원하길 부서지지 않길 바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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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민우회성폭력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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