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한 시각2012.10.09 22:12

성폭력 사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날로 높아져 가고 있는데, 성범죄에 대한 법조인의 인식이 일반인의 감정과 판이하게 달라 관대한 처벌경향이 있어왔다. 지난 몇 달 사이 발생한 성폭력 범죄와 관련해 쏟아지는 갖가지 사후약방문들이 나오고 있지만, 성범죄의 근본 원인에 대한 가공할 정도의 재현 방식이 주는 문제점도 적지 않다.

이런 시기에, 참여하게 된 [성폭력 판례분석 기획단]에서 분석한 판례 28개 중 마음에 계속 빚을 지고 있는 느낌으로 남아있는 판례(2010고합815,1303/2010.10.15선고)가 있다.

판례의 사건개요는 다음과 같다. 
피고인(15세)이 공범 갑과 어린 학생들을 대상으로 금품을 빼앗을 것을 공모한 후, 길에서 만난 을(여, 14세)을 인근 아파트로 유인한 다음 갑으로 하여금 밖에서 기다리게 한 후, 을을 위 아파트 23층에 있는 엘리베이터 기계실 앞으로 데리고 가 어둡고 낯선 장소에서 겁을 먹은 피해자로부터 5,600원이 들어있는 지갑을 강취하였고, 곧이어 을을 강간하려 하였으나 을이 반항하여 미수에 그친 후, 계단을 내려가면서 자리를 비우자, 위 강간미수 범행으로 인해 공포에 휩싸인 을이 피고인이나 공범 갑에 의한 추가 강간피해를 모면하기 위하여 위 23층 엘리베이터 기계실 창문을 열고 뛰어내렸다. 이로써 피고인은 피해자로 하여금 즉석에서 다발성 손상으로 사망에 이르게 하였다.

본 판례는 15세의 소년이, 이틀 전 가출하여 자신의 집에 함께 머무르던 친구(공범 갑)와 자신의 집에서 인적이 드문 골목길을 지나가는 어린 학생들을 상대로 금품을 빼앗을 것을 공모한 사건으로, 1심에서 징역 장기 2년 단기 1년 6월과 120시간의 성폭력 치료프로그램이수명령이 선고되었다.

양형이유에서,
감경요소로는 특수절도죄로 소년보호처분을 받은 적이 있으나, 형벌을 받은 전력이 없고, 이 사건 범행을 모두 인정하며 그 잘못을 뉘우치고 있는 점, 이 사건 공갈 및 특수절도 범행의 각 피해액이 비교적 경미한 점 등을 들었고, 가중요소로는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강간 등)으로 범행의 죄책이 가볍지 않은 점, 피고인에게 강간의 고의 및 피해자의 사망에 대한 예견가능성이 없어 강간치사죄가 성립하지는 아니하나, 피고인이 저지른 이 범행으로 인하여 크나큰 정신적 충격을 받은 피해자가 위 범행 직후 위 아파트 23층에서 뛰어내려 사망한 점, 피고인 측과 피해자의 유족들 사이에 합의가 이루어지지도 않은 점 등을 들었다.

양형의 문제지점은
첫째, 성폭력 사건에서 법관이 가지는 특정한 태도로 인해 현실에서 일어나는 강제적 성폭행의 폐해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판례에서 보면, 성경험이 없던 14세의 어린 소녀인 피해자가 사건 당일 1시간이상 피고인으로부터 강제추행을 당한 직후, 극도의 수치심과 절망을 이기지 못하고 범행현장인 아파트 23층에서 투신자살한 결과일 가능성을 배제하고, 피고인으로서는 피해자가 피고인이나 1층에서 대기 중이던 공범 갑에 추가로 당할 수도 있는 강간을 모면하기 위하여 23층에서 창문을 넘어 뛰어내려 사망에 이르리라고는 예견할 수 없었다고 보는 것이 경험칙에 부합한다는 이유로 강간치사죄의 성립을 부정한 것으로, 정형화 된 법리해석만 할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도 수긍할 수 있는 판결이 되도록 사건의 이면에 대한 통찰이 요구된다.

둘째. 법원의 성폭력 판례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법관의 남성중심적인 성의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강간미수죄의 성립 여부에서, 피고인은 피해자를 강제로 추행할 의사로 피해자의 가슴을 만지고 피해자의 성기 안에 자신의 손가락을 집어넣었다가 뺀 후 자신의 성기가 발기되자 간음행위로 나아가지 않고, 피해자를 등진 채 벽을 향해 자위행위를 한 점과 피고인이 이 사건 범행 당시 성경험이 없는 15세의 소년이었으므로, 피해자를 강간할 고의는 없었다는 취지로 변소하고 있다. 하지만 무죄부분에서는 피해자를 유인해 오면서 피해자를 강간할 마음을 먹었던 피고인은 계속하여 손으로 피해자의 목 부위를 잡아당기고 오른팔로 피해자의 팔을 잡아당긴 후 강제로 수회 키스하고, 피해자가 아프다고 하면서 몸을 비틀어 빠져나가려고 하자 도망가지 못하게 피해자를 붙잡은 후, 피해자의 가슴을 주무르고 입고 있던 청반바지 단추를 풀고 바지 지퍼를 강제로 내린 후 팬티 속에 손을 넣고, 손가락을 피해자의 성기 안에 집어넣자 피해자가 아프다고 하며 계속 반항하였음에도 계속하여 피해자의 성기에 손가락을 집어넣은 후 자신의 성기를 꺼내어 피해자를 강간하려 하였으나, 피해자가 아프다고 소리치고 반항하여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미수에 그쳤다고 적시되어 있다.

결국, 법원이 성폭력을 판단하는 주요한 기준은 현실적인 저항행위가 존재여부이기 때문에 재판의 대상은 피고인이 아니라 피해자의 행위가 되고, 법관의 합리적인 판단은 피해자의 저항행위가 존재했는지 여부에 맞춰지게 된다. 그러므로 피해행위를 문제 삼는 태도는 결국 피해자의 평소 생활태도에 대한 평가로 이어지기 때문에 피해자에게 불리한 증거로 인정될 수 있는 가능성이 많아서, 강제적 성행위를 판단하는 기준을 피해자의 의사에 두는 것이 합리적이다.
특히  위 판례의 사건은
피해자가 사망에 이르렀기 때문에 가해자의 진술에 더 의존하게 되기 때문에 피해자의 경험이 더 반영되기 어려운 점이 있다는 것을 재판부가 고려하는 것이 필요했다.

성폭력 피해자들은 수치심과 개인적인 모욕감으로 인해서 사실을 숨기고 혼자서 모든 피해를 감내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되는 이유 중 하나는 성폭력과 피해자들을 문제의 원인으로 도리어 비난하는 사회적 태도 때문이다. 성별화 된 범죄인 성폭력으로 인해 인간으로서의 주체성의 침해를 경험한 성폭력 피해자들의 명예가 회복되기 위해서는 재판부의 성의식 변화가 절실하다.

귀여운 별칭 처럼 아기자기한 사과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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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민우회성폭력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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