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한 시각2012.10.18 16:13

지난 8월부터 현재까지 기획단에서는 지난 합의가 양형감경사유로서 제시될 때 그것이 양형이 미치는 영향이 어느 정도인지 객관화될 필요가 있고, 단지 합의 여부만이 아니라 합의 과정과 내용에 대한 질적인 평가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을 법원에 보내는 의견서에 담았다. 그리고 친족성폭력이나 부부강간의 경우 합의를 양형감경사유로서 고려하는 것이 합당하지 않다는 주장도 모아냈다. 하지만 성폭력범죄 합의와 관련해서는 법원과 검찰에 보내는 의견서에 공식적인 언어로 담아내지 못한 수많은 우려, 고민지점들이 존재한다. 성폭력범죄가 피해자에게 주는 고통의 정도, 금전으로 피해가 완전히 회복되기 곤란한 범죄의 속성, 친고죄 규정의 전면 폐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 합의과정에서 발생하는 피고인의 합의종용에 대한 우려 등을 고려할 때, 성폭력범죄의 형사합의에 관해서 우리 모두 앞으로 더 많은 이야기들을 꾸준하게 해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이 글에서는 의견서에 다 담아내지 못한 기획단의 맥락들, 우려지점, 그리고 고민들을 조금 더 폭넓게 이야기하고자 한다. 


1)피고인의 합의할 의사가 아니라 피해자의 합의 및 처벌의사 확인이 우선시되어야 한다.

성폭력범죄에서 합의를 양형감경사유로 고려할 때, 피고인의 합의할 의사가 아니라 피해자의 합의 및 처벌의사 확인이 우선시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세밀한 판단이 필요하다. 형사합의의 본질이 피고인이 양형상 유리한 사유를 확보하기 위한 점에 있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의 피해회복 자체에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피고인의 합의할 의사가 아니라 피해자의 합의 및 처벌에 대한 의사를 우선적으로 확인해야 하는 것이다. (장다혜, “성폭력 ‘형사합의’에 관한 페미니즘 법학적 경험 연구”, 서울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12 , pp.323-324)

때문에 성폭력 사건에 있어서 합의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전적으로 피해자의 자유로운 선택에 맡겨져 있다는 점이 알려져야 하며, 그 과정에서 피해자의 합의를 유도하기 위한 설득이나 종용을 제한하는 절차적인 지침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합의와 공탁이 감경요소로 참작되는 이유는 그것이 피해자의 피해회복에 도움이 된다는 점 때문인데, 피고인이 양형상의 이익을 얻기 위해 피해자가 원치도 않는 형사합의를 시도한다면 이는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합의를 통한 가해자의 금전적 해결은 잘못에 대한 배상이라기보다는 ‘보상’ 혹은 단순한 ‘합의’의 성격이 보다 부각되고, 양형감경은 합의한 것에 대한 ‘댓가’로서 표상되기 쉽다. 즉, 피의자(피고인)의 입장에서 합의는 피해보상의 개념이 아닌 양형감경이 목적이 되는 것이다.

합의는 피해자의 피해회복을 전제로 성립하며, 따라서 피해자의 이익, 감정에 기반한 피해자의 의사에 의해 선택되는 피해자의 권리로 해석되어야 한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그리고 합의의 본질이 피해자의 피해회복 자체에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성폭력의 가해자로서 피해회복을 위한 노력은 양형상 유리한 위치를 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적으로 당연한 것’이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2)형사절차 담당자나
피고인의 합의종용이나 강요로 인한 피해로부터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는 규정이 필요하다

2011년에 성폭행 사건 피해자로 재판을 받던 한 여성이 재판에서 증언을 한 다음 날, “판사가 모욕을 주고 합의를 하라고 했다”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판사가 모욕 주고 합의 종용’ 성폭행 피해여성 자살 파문”, <한국일보> 2011년 6월 10일자.)유서에서는 재판 과정에서 성폭행 가해자를 무고한 것이 아니냐는 질문과 합의종용이 있었다고 전해졌다. 이렇게 합의여부에 대한 피해자의 의사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개별 담당자에 따라 사법기관이 형사합의를 제안하거나 종용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경찰이나 검사, 판사는 합의 유무를 관행상 질문할 뿐이라고 해도 피해자에게 그 비중은 상당한 부담으로 돌아온다. 성폭력 인정의 판단을 구하는 입장의 피해자와 이를 판단하는 위치에 있는 수사관과 재판관의 위치는 결코 동등할 수 없기 때문이다. 법원에서는 '합의할 시간을 주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피해자의 의사를 고려하지 않고 재판을 연기해 피해자에게 또 다른 고통을 안겨주기도 한다. (이미경, “성폭력 2차 피해를 통해 본 피해자 권리”,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12, pp.71-72.)

또한 성폭력범죄에 있어 ‘피해자와의 합의 여부’가 형의 경중 및 집행유예 여부를 정하는 데 있어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하고 있어, 피고인 측이 피해자에게 접근하여 고소 취소를 강요하는 등 피해자에 대한 2차 피해 초래의 주된 요인이 될 우려지점이 많다. 성폭력범죄의 경우 양형에 있어 합의가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기 때문에 피고인과 그 가족이 더더욱 합의에 매달리게 되어 그 결과 피해자가 협박에 가까운 정도의 합의 종용에 시달리는 상황이 발생한다. 피해자의 인적사항은 경찰이나 검찰 담당자가 아니고서는 누구도 알 수 없는 정보인데, 수사나 재판과정에서 합의는 '사과'의 의미로 해석되며 관행적으로 그 여부를 확인하기 때문에 수사기관에서 피해자의 인적사항을 가해자 측에 넘겨주는 경우도 많다. 양형시 피해회복을 위한 피고인의 노력이 유리한 정상참작사유가 되기 때문에 법원은 형사합의를 피고인의 방어권의 일환으로 고려하기 때문이다.(장다혜, 위 논문, pp.145-148.)


3)피해자가 합의가 아니더라도 정당한 배상을 받고 피해의 회복을 도모할 수 있도록 하는 체계의 마련이 필요하다.

성폭력범죄에서의 합의는 성폭력 피해자의 보상권이 매우 제한적으로만 보장되고 있는 현실적인 맥락과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피해자에 대한 피해 배상은 ‘합의’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고, 피해자는 종종 피고인이 처벌받도록 할 것인가, 아니면 배상을 받을 것인가를 사실상 ‘선택’하는 현실에 직면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피해자가 가해자의 처벌을 원한다 하더라도 피해회복을 위한 비용이 필요한 경우 어쩔 수 없이 가해자와 합의하고 고소를 취하하기도 한다. ‘합의’를 하지 않으려면 민사소송을 별도로 제기하여 또 다른 시간과 노력과 비용을 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Ⅲ. 성폭력 피해배상 관련 제도”, 한국여성개발원 연구보고서 Vol.210-28, 2004 참조.)

이와 같은 우리 법현실을 볼 때, 범죄 피해의 확인과 더불어 피해자가 정당한 배상을 받고 피해의 회복을 도모할 수 있도록 하는 체계의 마련이 절실하다. 성폭력 피해자를 위한 제대로 된 배상 체계가 갖추어질 때, 가해자의 처벌을 원하더라도 피해회복을 위한 비용이 필요하여 어쩔 수 없이 형사합의를 하는 상황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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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민우회성폭력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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