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한 시각2012.10.31 15:09


   기획단이 직접 살핀 판례를 함께 보자. (판례 21번) 광주고등법원 2009노356 사건에서 피고인은 자신의 차량으로 피해자를 유인하여 강간하기로 마음먹고 피해자에게 접근한 후, ‘차량이 주차장에 있는데 비가 오고 술이 취해서 갈 수 없으니 그곳까지 데려다 달라’고 하며 유인하였다. 즉, 술에 취한 상태를 호소하며 이를 범행에 이르는 수단으로 삼았다. 이 경우에도 피고인이 심신미약으로 판단력이 흐려서 책임을 물을 수 없는 경우라고 할 수 있을까? 법원은 ‘심신미약의 정도에는 이르지는 않았지만 이 사건 범행 당시 술에 취하여 판단력이 다소 떨어져 있었다고 보인다’고 밝히면서 양형시 감경인자로 고려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심신미약에 주장에 대한 판단에서 ‘범행에 이르는 경위, 범행의 수단과 방법’을 고려한다면서도 결국은 음주상태를 감경요인으로 적용했다는 것은 다소 모순적인 판단이라 생각한다. 


   또 다른 사례를 보면, (22번판례)부산고등법원 2009노360 사건에서는 피고인이 음주 후 고스톱 게임을 하던 중 만 5세의 피해자를 추행할 마음을 먹고 베란다로 데려가 강제 추행하였다. 법원은 이 사건에서도 ‘술에 제법 취한 상태에서 우발적으로 저질렀다’고 보았다. 심신미약의 개념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나, ‘음주로 인한 우발적 행동’ 이라는 판단이 지나치게 기계적으로 남발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특히 해당 범죄가 성범죄일 때는 사건이 일어난 맥락에서 음주가 어떤 요
인으로 작용했는지 세심하게 살필 필요성이 있다.

 

2012년 3월에 공개된 대법원 성범죄 양형기준은 이를 반영하여 수정한 듯 보인다.

범행의 고의로 또는 범행 수행을 예견하거나 범행 후 면책사유로 삼기 위하여 자의로 음주 또는 약물로 인하여 만취상태에 빠진 경우에는 피고인이 범행 당시 심신미약 상태에 있었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만취상태를 일반가중인자로 반영한다

범행의 고의가 없었고, 범행 수행을 예견하지 못하였으나, 과거의 경험, 당시의 신체 상태나 정황 등에 비추어 음주 또는 약물로 인하여 만취상태에 빠지면 타인에게 해약을 미칠 소질(가능성)이 있는 경우에는 피고인이 범행 당시 심신미약 상태에 있었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만취상태를 감경인자로 반영하지 아니한다.

 ①, ②에 해당하지 않더라도 범행 당시 심신미약 상태에 이르지 않은 경우에는 만취상태를 감경인자로 반영하지 아니한다.


   그러나 수정된 양형기준이 실제 판례에서 효과적으로 적용되고 있는지는 의문이 든다. 대법원 공개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전국 법원 성범죄 양형기준 준수율이 88.6%에서 2011년 79.1%로 9.5%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한편에서는 성범죄 처벌 강화를 주장하고 있는 데 반해, 조속하게 이루어지는 법 개정에 법원은 오히려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무엇이 옳을까. 이에 대한 숙고가 필요한 시점이다.

 안나(판례분석 기획단)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Posted by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민우회성폭력상담소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