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실2006.10.20 15:12

<판례펼치기> 

<판례 펼치기>에서는 대법원 판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성폭력사건을 지원하다보면 법의 한계를 뼈저리게 느낄때가 많습니다. 분명한 성폭력사건임에도 불구하고 경찰수사단계에서 반항한 증거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피해를 의심받고 결국 가해자가 무죄로 풀려나는 것을 볼 때면, 법 앞에 보이지 않는 유리벽이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 비슷한 사건을 지원하게 될 때 자신없어하는 스스로를 발견하면서 자괴감에 빠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대법원 판례를 보면서 ‘통상적인 법’이라고 생각하던 부분을 넘어서려는 시도를 발견합니다. 의미있는 판례들을 찾아가면서 사건해결의 희망을 찾아보고자 합니다.

  

피해자의 반항을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하게 곤란하게 할 정도의
폭행.협박이 있어야만 강간죄는 성립하는 것인가?

 

윤지숙+장유강
/ 37기 사법연수생
(사법연수원에서 실시하는 사회봉사연수 프로그램을 수행하러
민우회 성폭력 상담소에 자원해주신 사법연수생입니다.)

  우리 형법은 제297조에서 “폭행 또는 협박으로 부녀를 강간한 자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고 하여 강간죄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형법상의 “폭행․협박”은 경우에 따라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집니다만, 강간죄의 경우에는 “피해자의 반항을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하게 곤란하게 할 정도의 폭행․협박”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현행 강간법제 하에서는 여성의 동의 없이 간음행위가 행해졌더라도 피해자의 반항을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하게 곤란하게 할 정도의 폭행․협박이 없는 경우에는 강간죄의 성립을 인정하기가 매우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이와 같은 사례로 대법원 2004. 6. 25. 선고 2004도 2611판결을 들 수 있겠습니다. 이 판결의 사실관계는 다음과 같습니다.
 
 피해자는 피고인과 인터넷 채팅을 통해 알게 되어 집 근처 PC방에서 처음 만나게 되었다. 그 날 밤 12시가 조금 넘어 피고인은 피해자를 비디오방으로 데려갔고 피해자는 영화를 보면서 졸고 있었는데 피고인이 갑자기 피해자의 가슴을 만지자 피해자가 ‘하지 마라’고 하면서 손을 뿌리쳤다. 그러나 피고인은 또 ‘우리 뭐 하자’고 하면서 강제로 바지를 벗기려고 하기에 피해자는 너무 놀라 일어서서 나가려고 하는 등 강하게 반항하였으나 피고인이 피해자를 힘으로 제압하여 피고인을 긴 소파에 끌어다가 눕히고 강간하였다. 다음날 아침 비디오방에서 나와 피고인의 제의로 피고인이 근무하는 회사 숙직실로 함께 가게 되었고 피해자는 그곳에서 쪼그려 자고 있었는데 피고인이 다시 바지를 강제로 벗기더니 비디오방에서처럼 강간을 했다. (피해자는 ‘강간 당시 피고인이 위험한 물건이나 흉기로 협박한 사실은 없었고 힘으로 누르고 위협하듯이 인상을 쓰면서 미친 사람처럼 강간했다’고 진술하였다)

  이 사건에서 대법원은 피고인은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는 정도의 유형력을 행사하여 피해자를 간음한 것으로 볼 여지는 있으나, 더 나아가 그 유형력의 행사로 인하여 피해자가 반항을 못하거나 반항을 현저하게 곤란하게 할 정도에까지 이르렀다는 점에 대하여 증명이 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하여 피고인에 대해 유죄를 선고한 원심판결을 파기환송하였습니다.

그러나 위와 같은 전형적인 판례와 달리 대법원 2000.6.9.선고 2000도 1253판결은 피고인이 행사한 유형력이 실제로 피해자의 반항을 억압하거나 현저하게 곤란하게 하지 아니하였을지라도 피고인이 행사한 유형력이 피해자의 항거를 불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의 폭행 또는 협박을 “개시한” 행위로 평가될 수 있다면 강간죄가 성립한다는 취지의 판시를 하면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였습니다. 사실관계는 다음과 같습니다.

 피고인은 자신의 동거녀의 딸인 피해자를 강간할 마음으로 피해자의 방에 들어가 피해자의 팔을 잡아 그 곳 침대에 눕히고 몸으로 눌러 입술을 빨고 계속하여 저항하는 피해자에게 ‘00은 대학생이니까 괜찮다’고 하면서 피해자의 유방과 엉덩이를 만지고 피해자의 팬티를 벗기려고 하여 피해자가 이를 뿌리치고 동생 방으로 건너가 강간미수에 그친 것이다.(당시 피고인은 집에 들어올 때부터 매우 취한 상태에서 힘없이 흐느적거리며 만졌기 때문에 피해자가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고, 위와 같은 일이 있었던 이후에도 피고인은 아무 일이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였고 피해자를 포옹한 적이 여러 번 있다)

 위 사안에서 대법원은 피해자의 반항을 억압할 정도의 유형력의 실제적 행사가 없었음에도 강간죄의 성립을 인정하면서 위와 같은 사실관계라면 피고인은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여 피해자의 반항을 억압하거나 현저하게 곤란하게 할 정도의 유형력의 행사를 “개시”하였다고 보아야 할 것이라고 판시하여 기존의 판례보다 전향적인 판례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주류적인 판례의 태도는 폭행.협박의 개념을 엄격히 파악하여 비교적 약한 폭행.협박을 수단으로 피해여성에게 극도의 성적수치심과 인격적 모멸감을 주는 행위까지도 무죄라고 해석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강간죄의 폭행.협박을 최협의로 파악하는 이러한 전통적인 판례의 태도에 대하여는 객관적인 제3자의 입장보다는 피해자의 주관적 입장에서 피해자의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가 있었는지에 따라 강간죄의 성립을 인정하여야 할 것이라는 견해가 제기되고 있으며 우리 판례도 비록 하급심이지만 피해자의 입장에서 강간죄의 성립을 재해석하려는 노력을 보이고 있어 앞으로 강간죄에 대한 법원의 적극적인 태도를 기대해 봅니다.


Posted by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민우회성폭력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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