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실2006.10.20 15:26

<상담소 생생>

 

성폭력 사건 보도 모니터링은 중요하다

 먼지

 / 민우회 성폭력 상담소 상근활동가

 

“그게 정말이야?” “응, 신문에 났던데?”
일상의 한 귀퉁이를 차지해도 전혀 어색할 것이 없는 대화. 신문에 그 내용이 보도되었다는 것이 어떤 사건의 진실성을 뒷받침하고 있는 현장이다. 이 대화 뒤에는 신문이 <객관적인> 보도를 한다는 습관적인 믿음이 숨어있다.

뉴스, 기자, 신문, 언론, 이런 단어들은 사람들에게 막연한 신뢰감을 준다. 그도 그럴 것이 선정성의 극단을 달리고 있는 TV방송에서도 뉴스를 진행하는 아나운서만은 근엄한 정장을 입고 딱딱한 말투를 고수하며 그 근엄함이 곧 뉴스의 신뢰성인 것처럼 등장하고, 각 언론사들이 공식적으로 홍보하는 자사 보도태도의 첫머리에는 공정성과 객관성이라는 말이 의례적으로 쓰이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객관성>을 가장 중요한 직업윤리로 꼽을 직업인 판사의 경우를 보자. 판사가 언제나 객관적인 제3자라면, 동일한 사건에 대한 판례는 언제나 같아야 한다. 하지만, 남자아이의 성기를 만지는 것이 한 때는 손자를 귀여워하는 애정의 표현이었지만, 2006년에는 법원 판례로 기록되어 있는 성추행 사건이 되었듯이 판사의 <객관적인> 입장 역시, 당대 사회 사람들의 인식 변화와 여전한 통념들 사이에 놓여있는 한 시각일 뿐이다. 신문 기사 또한, <객관적>이기를 노력하거나 주장하는 기자 개인의 주관적인 글쓰기이다. 위에서 예로 든 판례를 같은 날 보도한 서울, 한겨레, 조선 세 신문을 비교하면, 기자에 따라 같은 사실이 조금씩 다른 정보로 다듬어진 것을 볼 수 있다.

 -서울신문 2006.1.27.금 사회플러스 <교사가 남학생 ‘고추’만지면 성추행>
대법원3부는 26일 초등학교 수업시간에 남학생의 성기를 만져 미성년자 의제강제추행혐의로 기소된 교사 이모씨에게 벌금 5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과거에는 어른이 남자아이의 성기를 만지는 행위를 큰 문제로 삼지 않았지만 근대적 남녀평등 이념의 확산으로 동성 간 성추행에 대한 인식도 변화하는 등 피해자 입장에서 추행여부를 판단할 필요가 있다’면서 “변화된 성적 가치관과 도덕관념에 비춰볼 때 피고인의 행위는 추행으로 인정된다”고 밝혔다.

 서울신문은 사실을 요약한 뒤 판결문을 인용을 통해 이 사건을 동성 간 성추행 사건으로 명명하고 추행여부를 판단하는 데에 피해자 입장이 중요한 근거가 된다는 정보까지 전하고 있다. 한겨레는 같은 사건에 대한 판결문 중에서도 다른 부분을 인용하고 있다. 

 한겨레 2006.1.27.금.간추린뉴스 <귀엽다며 성기만진 교사에 유죄확정>
(..중략..)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이 교사의 행위는 정신적, 육체적으로 미숙한 피해자의 심리적 성장과 성적정체성 형성에 부정적 영향을 그쳤으며, 사회환경과 성적 가치기준 및 도덕관념에도 어긋난다”고 밝혔다.(..중략..)

 한겨레의 보도에 따르면 이 사건은 동성간 성추행 사건이기 보다는 도덕관념을 위반한 사건이다. 그리고 이 사건이 유죄인 이유는 피해자가 미성년자이든, 성인이든 그의 성적자기결정권이 침해당했기 때문이 아니라, 성추행이 미성년자에게 가해짐으로서 발생한 부정적인 교육효과 때문이다. 조선일보도 한겨레와 같은 부분을 인용하며 이 사건에 대해 같은 진단을 내리고 있다. 

 조선 2006.1.27.금.사회<“요녀석, 고추 좀 만져보자”는 성추행>
(..중략..)
박군은 1심 법정에서 “선생님이 옷 위로 살살 자극을 주다가 성기가 딱딱해지면 쥐어뜯고 꼬집었다.” “미움받고 맞을까봐 거부하지 못했다” “아프고 불쾌했다” “창피해서 어머니에게 말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13세 미만인 어린이는 외부의 부적절한 성적 자극이 없는 상태에서 성적 정체성을 형성할 권리가 있다”며 “이씨의 행위는 교육방법으로도 잘못됐고 박군의 성적 정체성 형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밝혔다.

 특이한 점은 피해자의 법정진술을 인용한 것인데, 사건을 재연하듯 묘사한 이 부분은 성폭력 사건을 다룰 때에 재연 장면을 넣어 눈길을 잡아두는 tv방송과 같은 효과를 낳는다. 성폭력 사건을 이해하는 데에 필요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가해 행위를 재연하는 이유. 그것은 그 내용이 ‘성적’이라서, 독자의 호기심을 끄는 이야기꺼리가 되기 때문은 아닐까.

 이렇게 같은 사건이라도 기자가 어떤 태도로 사건을 서술하는지에 따라, 어떤 시각을 갖고 관련 정보를 인용하느냐에 따라 기사가 전하는 정보의 내용은 달라진다. 그러나 한 신문만을 구독하는 독자라면, 각 신문사의 기자가 주관적으로 선별하고 판단한 정보만으로 사건을 인지하고, 그것을 객관적인 사실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가기가 쉽다. 그렇기 때문에 신문 모니터링은 중요하다. 특히 성폭력은 가해자 중심의 인식, 피해자 유발론 등의 통념이 강하게 작용하는 이슈이기 때문에 어떤 시각을 가지고 성폭력을 들여다보고 진단할 것인지의 문제가 중요한 것이다.

 성폭력 상담소에서는 5명의 자원활동가와 함께 2006년 1월~6월 동안 6개 일간지에 실린 성폭력 사건 보도 태도를 모니터링하고, 현재는 심층적인 분석작업을 진행 중이다. 위에 예로 든 판결보도를 분석한 내용 역시 이 작업을 통해 함께 만들어 낸 것이다. 2006년 상반기에는 보도된 성폭력 사건이 많았기 때문에 6개 일간지의 사건보도를 모니터링 하는 작업은 방대할 수밖에 없었다. 그 양의 방대함 덕분에, 그리고 기자들의 통념이 슬쩍 배여 있는 각 신문사의 기사들을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분석한 내용을 한눈에 들어오는 정리된 모니터링 틀로 뽑아내는 작업의 복잡다단함 때문에, 모니터링은 사실 조금은 괴롭게 진행되고 있다. 몇 달간 일주일에 한번, 때로는 두 번 씩 상담소 사무실에 둘러앉아 밤 10시를 훌쩍 넘겨가며 논의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확인 한 것은 신문기사에는 글쓴이-기자들이 가진 성폭력에 관한 통념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쯤에서.. 구체적인 내용이 궁금해지신다면 10월 31일로 예정되어 있는 모니터링 내용 발표 심포지움에 당신을 살짝 초대하며..^^

 모니터링을 함께 한 자원활동가 한 사람이 이런 말을 전한다. “신문을 읽으면, 그냥 읽잖아요. 이 기사의 영향력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면서도, 사실 영향을 받으면서. 특히 언론에 의해 성폭력 피해자에게 2차 피해가 발생하는 경우에 대해 이야기했을 때, 이제까지 신문기사를 그저 볼거리로 소비하는 독자였던 나의 위치를 다시 볼 수 있었어요.”
우리의 신문 모니터링 작업이 차곡차곡 쌓여 신문 생산자에게도 독자들에게도 이런 고민들이 전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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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민우회성폭력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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