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실2007.02.13 15:42

쉼이 되는 나무, 성장하는 나무
-자원상담원 활동 1년을 돌아보며

 박종숙 12기 상담원

도서관 휴게실, 청소년 둘이 앉아있다. 뭔가 불만이 가득해 보이는 여학생과 그런 친구를 근심어린 눈으로 보고 있는 남학생. 잠시 후 남학생이 여학생의 목덜미와 어깨를 주물러 주기 시작했다. 그때 내 시선을 잡은 것은 청소를 하시는 할머니였다. 나는 속으로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재미있어 하는 마음으로 보고 있었다. 할머니는 힐끔힐끔 청소년들을 보시며 혀 찬 소리를 하셨다. 나도 무표정하게 외면하듯 했지만 속으로는 ‘쯧쯧’ 했을 게다. 일년 전이라면...

순간순간, 어떤 상황 혹은 사소한 경험에서 의식의 변화를 느끼게 될 때 생기는 뿌듯함을 누가 알까?  이럴 때 느끼는 행복감은 서서히 퍼지는 향기 같다.

민우회라는 성 평등한 배에 승선한 것은 자원 활동 하겠다는 소박한 마음과 경력의 필요성이라는 앙큼한 이기심이 뒤섞인 조금은 불손한 의도였다. 성폭력상담원 교육을 받으면서 소극적인 성격으로 있는 듯 없는 듯 64시간만 채우면 자원 활동할 수 있을 거란 기대와 여성단체 특히 민우회에서의 활동경력은 높게 평가된다는 사전 정보를 믿고 교육에 충실(?)히 임했다. 살짝살짝 지각 하면서. 누구도 나에게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조용히 교육에 참여할 수 있었다. 첫 수업에 간단히 자기소개 시간이 주어져서 다른 분들은 서로의 이력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나는 지각해서 다른 교육생들의 배경을 모르는 채로 교육에 참여했다. 그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느긋한 마음으로 교육에 참여했는데 교육이 진행될수록 마음이 자꾸 무거워졌다. ‘계속해야하나?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갖게 된 것이다.

질서 있는 삶에 충실한 FM형 인간인 나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의식의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처음 나의 가치관과 충돌한 것은 ‘피해자 유발론’이었다. 피해자를 비난하는 말들이 사실은 피해자에게 성폭력의 책임을 돌리는 사회적인 시선의 문제라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그래도 좀 조심하지’ 하는 생각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지금도 나의 의식 속에서 설왕설래하는 또 한가지 주제가 ‘청소년의 성’이다. 청소년의 성을 존중하자는 것에 동의하면서도 아이들이 책임이 필요한 성적 행동을 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성숙한 것일지, 걱정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충돌은 이제껏 내가 가지고 있었던 윤리관과의 충돌이기도하다. 마음의 갈등으로 고민하면서도 중도에 포기하는 것은 성격상 드문 일이라 ’끝까지 가보면 뭔가 정리가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스스로를 다독거리며 교육을 마쳤다. 자원 활동 여부를 고민하던 중 그 사이 친밀해진 몇몇의 동기들의 격려에 힘입어 심화교육까지 받고 현재 자원 활동을 하고 있다.

민우회 활동을 하면서 접하게 된 새로운 시각들과 나의 가치관은 지금도 종종 충돌하곤 한다. 하지만 나의 성의식이 향상되고 있음을 느낄 때마다 대견하다. 신문을 읽을 때, 영화를 볼 때 여성의 눈으로 보려고 노력한다. 성적자기결정을 당당히 말 할 수 있게 되었고 성에 대한 이야기를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걱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기만 했던 청소년의 성문화를 인정하고 대화할 수 있는 시각을 가지게 된 것 같다. 앞으로 민우회 활동을 하면서 내담자의 이야기를 공감, 지지하고 정보를 제공하고 긍정적인 자원을 찾아 당당하게 거듭나도록 도움을 주는 사람일뿐만 아니라 나 스스로 치유 받고 성장하면서 도움을 받는 사람이 될 것 같다. 무엇보다 큰 보람은 ‘나무’라는 근사한 별칭을 얻은 것이다. 그 의미가 얼마나 좋은지. 나무처럼 편안한 사람이라나…….
한 가지 더 의미를 부여하자면 그늘도 되어주고 싶다. 나도 남도 쉬어갈 수 있는.

 박종숙_나무
서글한 눈웃음이 나무라는 별칭과 너무나 잘 어울리는 그녀.
나무 같은 성실함과 은근함으로 상담소와 함께 하고 있답니다.

Posted by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민우회성폭력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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